자유게시판
토론게시판을 개설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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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강원지회, 5회, 김장육입니다.
협회장님을 비롯한 임직원분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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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신 선후배님들이 많이 계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굳이 비전공자에다가 알량하기 그지없는 짧은 지식과 재주를 가진 제가 감히 나서서 이런 제안을 드린다는 것이 두렵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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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모두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출신도 다르고 서로의 가치가 다르기에 어떠한 일을 함에 있어서 충분히 그 우선순위가 뒤로 밀려 배치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게 되어 용기 내어 제안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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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작은 문제라도 할지라도 그 문제를 처음 인식한 사람은 그 조직을 위해 보고해야만 하는 것은 일종의 관습상의 의무이며 양심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각자의 가치에 따라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고, 비교적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사소하고 작은 문제라고 받아들여 질 수도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또한 바쁘고 큰일을 하고 계신 선후배님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놓칠 수도 있는 그런 사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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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누군가가 의무를 저버리고 있다거나 양심이 없다는 주장으로 오해하지 않아주시기를 간곡히 그리고 정중하게 노파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저는 나무의사 선생님들 모두를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또한 바쁘신 와중에 봉사하시느라 얼마나 힘든 일을 하고 계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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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저의 생각은 제가 생각해도 조금 유별난 면이 있는데, 그런 생각들로 인해서 제게는 양심의 문제로 여겨지게 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 뿐, 결코 제가 옳다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차피 인류는 진리에 수렴할 수 있을 뿐, 결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는 존재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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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너무 길어 본론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저는 우리 나무선생님들에게 ‘토론의 장’이 홈페이지에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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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토론의 장을 통해서 과학의 거짓가정부터 하나씩 차례차례 제거되기를 소망합니다.
숲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고 있는 동물학자 데이빗 해스컬 박사는 그의 저서 ‘숲에서 우주를 보다.’에서 이러한 거짓가정은 그 깊이가 깊지 않게 쉽게 뿌리 뽑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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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나무의사 선생님들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로운 토론, 때로는 논쟁들이 절대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토론과 논쟁이 없었다면 생물 분야에서 단연 최고 수준의 이론으로 평가받는 다윈의 진화론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토론과 논쟁은 우리 모두가 끝없이 배워나가는 과정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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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잘못된 ‘대화’가 의미 없는 ‘토론’과 ‘논쟁’보다도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명확한 주제를 가지고 임하는 토론은 그 결과가 신통치 않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다 같이 진리를 향해 탐구해 나가는 항해 중에 방향키를 지속적으로 수정해 나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잘못된 대화는 그저 빈정만 상하고 싸움으로 끝나거나 나아가 파벌을 형성하여 협동정신이 사라지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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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지금 우리에겐 대화의 장이 있어서는 안 되고 토론의 장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 주제는 명확해야 하며, 회원 그 누구라도 제기할 사안이 있다면 자유롭게 토론을 개시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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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협회 이사회의 의제 사항과 분리가 되지 않아서 애매모호하게 겹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는 소관 위원회 회장이 직접 좌장을 맡거나 여의치 않다면 각 분야의 최고의 권위자에게 좌장을 맡도록 하여 이를 처리하고, 이후 다시금 이사회에서 최종검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애초에 명백하게 이사회 의결사항이라면 회원들의 토론은 필요하지 않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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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선과 잡음만 늘어날 것 같은데, 그런 걸 굳이 뭐 하러 하자고 하냐고 반문을 하실 수도 있고, 그저 긁어 부스럼 만드는 일이라며 넘어 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사람인데 아주 조금의 우려도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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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분명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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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정체성(Identity)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는 각자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력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고 자격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위치도 다르고 심지어 양성기관 조차도 모두 다 다르게 되니 스승마저 다릅니다. 이러한 상황에 단순히 국가고시를 패스했다고 하여 같은 정체성을 가졌다고 보거나, 또한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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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마치 인류의 의학이 페놀성 화합물을 찾으면서 비로소 단순한 외과수술의 차원을 넘어서 진정한 의학의 길로 접어드는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탄수화물대사에서 수많은 형태를 띤 당들이 결국엔 회로 속으로 들어가 회로 속에서 뜯겨지고 다시 붙는 고난의 과정을 겪고 지질대사를 돌아줘야 비로소 페놀 혹은 페놀성 화합물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현재의 우리는 그저 여러 형태의 당일뿐 결코 페놀성화합물이 아니라는 것에 비유한다면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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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의 정체성을 갖기 위해서는 토론이야말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 유기회로와 같은 역할이 될 것이며 우리는 스스로를 믿고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숙명적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끼리도 생각이 다른데 어떻게 남을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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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토론의 장은 그렇게 다른 생각의 차이를 최소한 좁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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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전문성(Professionalism)
전문성은 우리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인정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우 민감한 얘기라서 정말 죄송스럽고 여러모로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나무의사’라고 국가기관인 산림청이 인정해주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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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에서 ‘사’는 스승 ‘사’이지 결코 선비 ‘사’가 아닙니다.
그 어떤 스승이 비전문가들의 인식과 오해를 두려워하여, 편의상 잘못된 용어를 바꿔 사용하는 선비처럼 행동한다면 그는 결코 스승이라고 평가 받지 못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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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경우라면 이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된 과학용어이며 무엇이 올바른 과학용어이냐를 따져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그런 이유 때문에도 토론은 필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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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는 개인적으로 인류가 올바름과 잘못을 구분할 수 있는 진리의 영역에 도달할 수는 있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진리에 어느 것이 더 수렴하고 있는가를 따져보는 것은 충분히 나무의사 선생님들이라면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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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장한 이론이나 생각들이 진리에 더 수렴하고 있다고 해서, 덜 수렴하고 있는 타인의 생각이 틀렸다고 비난할 수 없으며 비웃을 수 없습니다. 수렴하고 있는 것조차도 완전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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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의 모든 이론들이 무너지고 법칙들마저도 예외가 존재하게 되었듯이 언젠가는 지금의 대세인 양자역학의 이론 역시도 무너질 것입니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일련의 치열한 과정 속에서 토론할 줄 아는 성숙함과 배움을 터득하여 한 단계 한 단계 차근차근 발전했으며 결국엔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 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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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토론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전문가가 될 수 있으며, 전문가가 아닌 채로 어떻게 이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겠습니까. 발전에 기여한 바가 없는데 어떻게 밥그릇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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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실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영역이 있고,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영역이 있듯이, 토론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영역이야 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며 진정한 전문가로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꼭 필요한 선결과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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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소통(Communication)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대화’의 단계는 그 무엇이라도 대화라고 정의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Dialog 일 수 있고, 어떤 분에게는 Conversation 이며, 어떤 분에게는 일종의 Communication으로 받아들여 질 것 입니다. 심지어 상황에 따라서는 Gossip 이나 Chat 이라고 받아들여도 무방한 너무나도 넓은 범주의, 목적이 불분명한 형식의 소통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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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공지할 때 편리성이나 신속함을 갖고 있다는 장점을 비롯해서 수많은 장점이 존재할 것이므로 대화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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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쨌거나 목적을 가지고 모인 사단법인이고 나무의사 선생님들이시기에 그에 걸맞는 소통구조를 가지고 소통을 해야지, 편리성에 기대어 수없이 많이 산적해 있는 난제들에 대해 지혜를 모으고 의견을 모은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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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자라가면서, 혹은 열매가 익어가면서 사부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수많은 유세포들이 많은 노력을 하듯이, 위아래로 자유롭게 연결되어 하나의 소통구조 속에서 일치를 이루어 무엇이 우선순위인지를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한편으로 지금 제가 이런 건의를 드리는 것 역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혼자 심각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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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마다 각자의 노하우와 생각을 충분히 교환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웹사이트를 통해 의제별로 하나 하나씩 시간이 쌓여가면서 남게 되는 정보가 있어야 하고, 이 정보가 다시금 쉽게 제목별로 액세스 되어 검색될 수 있고, 때로는 자신의 의견도 더 할 수 있는 구조 속에서 맥을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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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우업 할 수 없는, 마치 볏단에서 바늘찾기 식의 소통구조 속에서 목적 없는 소통방식은 우리들 에너지의 낭비입니다. 물론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도 우리에겐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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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격에 맞는 적절한 토론구조는 우리에겐 ‘자본’일 것이고, 목적을 잃어버린 소통구조는 ‘부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본과 부채가 모여 ‘자산’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자산을 늘리자는 주장에 무조건적으로 반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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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의 자산을 늘리는데 있어서 자본을 늘려가는 소통구조를 애초에 제대로 확립해 놓아야 하는 것이지, 이 중대한 문제를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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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기수 집행부마다 분명히 하고자 하시는 일이 있고, 방향이 있다면 그것은 사부의 양방향 통행이 아니라 목부의 물관부처럼 일방통행으로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때는 일종의 비상연락망을 통해서 모든 회원에게 전달되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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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회원이 납득할 수 없는 문제라고 여겨서 동의를 하지 못한다거나 단순 부재, 혹은 연락 실패라면 건너뛰고 다음 회원에게 전달하여 그 결과를 위로 보고할 수 있도록 철저한 연락시스템이 구축되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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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로 비유하자면 이 연락망은 일종의 명령체계와 같아서 이 망을 동원하고자 할 때는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연락망 구축에 대해서는 이번 제안 내용이 아니므로 나중에 토론의 장이 마련된다면 다시금 건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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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은 우리에겐 사부체계와 같으며 우리의 자본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주제넘고 건방지게 토론의 중요성을 역설하였습니다.
불편하게 들리셨다면 넓은 마음으로 혜량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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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뭘 그렇게 토론할 거리가 많다고 이러느냐고 반문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주제는 지금의 주제와는 또 다른 별개의 차원이므로 이만하도록 하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저의 생각을 말씀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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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노파심에 첨언을 드립니다.
자유게시판으로 충분하지 않느냐고도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게 여기셨다면 고뇌에 찬 저의 글은 낙제점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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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은 어디까지나 대화의 공간이지 않겠습니까.
방종의 수준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면 그 어떤 주제라도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것은 회원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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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제안은 그런 단계의 공간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나무의사 선생님들에게 격에 맞는 토론의 장이 제공되어 협회가 발전해 나가는 것을 바라는 차원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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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으나 토론게시판이 개설되고 활성화되어 이후에 주제가 광범위하게 뻗어나가 분야별로 토론게시판이 추가 개설되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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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너무 길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나무의사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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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후배님들 모두 수고 많으십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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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지회, 5회
김장육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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